평산소씨 유래
1. 평산소씨 유래
(추후 족보 서문의 내용을 기록)
2. 고려시대 史料에 나오는 邵氏
고려시대에 邵氏 姓이 얼마나 분포되어 있었는가를 <고려사> [정인지 등이 1451년 편찬한 고려왕조] 正史 인명색인에 있는 文武官人數(공무원수) 통계에서 찾아보니 5명의 邵氏 姓이 나온다. 이는 고려사에 나오는 266姓 중에 77위에 해당한다. [한국의 성씨와 족보(이수건 저, 서울대출판부, 2003.6.5.)]
고려사에는 1104년 6월7일,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한 소태보(邵台輔)를 수태사(守太師)로 임명하고 이자의(李資義)의 반란을 소태보가 제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소태보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당시 기록에 많이 등장한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성이 주 활동무대인 점을 감안하면 그 후손이 개성에 정착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 조선시대 史料에 나오는 平山 邵氏
조선 영조 46년(1770)에 왕명에 따라 발행된 백과전서 문헌비고 文獻備考 [조선 영조 46년(1770)에 왕명에 따라 홍봉한 등이 우리나라 고금의 문물 제도를 수록한 책. 100권 40책의 활자본]에는 평산소씨 인물로 고려 명종 때의 소광인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귀화 성씨(김정호 저, 2003. 11. 214쪽)]
조선왕조실록에는 1418년 4월 15일, 태종이 좌의정 박은(朴訔)·병조 판서 김한로(金漢老) 등과 송도(松都)에서 한양으로 환도(還都)를 논하 과정에 소강절(邵康節)이 음양(陰陽)으로써 길흉(吉凶)을 앞서 알았으며, 그의 정(定)한 바는 거짓이 아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1733년 영조9년 12월19일 임금과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이 국정을 논하면서 박문수가「소강절(邵康節)의 시에 ‘당기기는 천균(千勻)의 쇠뇌처럼 하고, 갈기는 마땅히 쇠를 백 번 제련하듯 한다’ 하였으니,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국정을 논하면서 강절(康節)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1481년 성종 12년1월11일 성종실록에는 재상들과 의논하는 과정에 낙양에서 「소옹(邵雍)이 졸(卒)한 것을 구양비가 상주(上奏)하고 시호를 청하여 태상에 회부되었을 때입니다. 구양비가 박사(博士)로서 의시하게 되었는데, 구양비가 시호를 짓기를 ‘강절(康節)’이라고 하고」와 같이 시호를 지은 기록도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신라의 서울 경주부의 지리와 인구를 기록하면서 중국에서 온 성[唐來姓]이 2이니, 소(邵)·변(邊)이라 하여 邵氏를 언급하였다.
1786년 정조 10년 2월 26일 정조실록 기록에는 「어가가 행차하던 도중에 상언(上言)한 1백 50여 통을 판하(判下)하였다. 장단(長湍) 사람 소태석(邵泰碩)이 상언하여 ‘자신의 성씨는 강절(康節) 에게서 나왔는데, 명나라 좌통부(左統府) 소영(邵英)의 【《명사(明史)》에는 영(榮)으로 되어 있다.】 후손이다.’고 하면서 군적(軍籍)에서 빼달라고 청하였다. 」는 기록이 있다.
4. 韓國姓氏大觀 [한국성씨대관 1064쪽 稀姓編 (최덕교, 최승익 저, 1985. 창조사 판)]에 기재된 邵氏
邵氏 인구는 1960년도 국세조사 당시 약 7000여명으로 성별 인구 순위는 제149위에 해당한다. 본관은 平山 외에도 「조선씨족계보」에는 남양, 인천, 공주, 청산, 전주, 광주, 여랑, 진주, 밀양, 비안, 안태, 서화, 하남, 서촉 등을 들고 있으나 시조는 모두 미상이다. 소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주나라 召公의 후예로 전한다. (召公의 召자가 변하여 邵로 되었다고 한다.)
평산소씨의 시조는 고려 제19대 명종(재위 1170~1197)때 경상도 안찰사를 지낸 邵光賓으로 전한다. 그러나 고려사를 보면 그보다 앞서 문종~숙종대의 명신으로 소태보(1014~1104, 충겸공)가 있다. 그는 문종말 병부시랑을 거쳐 선종 때 형부, 이부상서 등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헌종 때 이자의가 난을 꾸미자 사전에 이를 분쇄했으며, 그 공으로 守司徒 판리부사에 올랐다. 숙종때 범궤를 하사받고 수상직인 문하시중을 지내고 안태사에 올랐다. 숙종 조정에 배향配享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安康소씨 唐投化人이라 하여 중국에서 귀화한 안강소씨가 따로 있는 듯이 기록되어 있는데 詳考할 길이 없다.
1930년도 국세조사때는 전국에 191가구가 있었는데, 그중 약 반수인 90가구가 개풍, 장단, 고양, 연천을 중심한 경기도 일원에 살았고 그밖에 황해도 연백, 셩산 등지에 39가구, 제주도에 36가구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경기도 일대와 제주도에 비교적 많이 살고 있다.
5. 역대 주요인물
소광빈(고려 명종조 안찰사)
소태보(고려 숙종조 문하시중)
▼ <고려사> [정인지 등이 1451년 편찬한 고려왕조]